판타지와 현실의 닮은꼴, 극사실적인 판타지 작가 정우재
안녕하세요, 저는 유화를 통해 극사실적인 표현 방법으로 판타지를 그리고 있는 작가 정우재입니다.
제 작품에는 거대해진 반려동물과 사춘기 소녀가 등장하고 이 둘의 관계성을 통해 현실에서의 결핍을 마주하며 위로를 건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거대해진 반려견은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가질 수 있는 불안과 정서적인 결핍에 대해 위안과 보호의 의미로 존재합니다. 때로는 이 작은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울림이 우리에게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쉼을 주기도 하고, 꾸밈없는 온전한 자신을 발견하게도 해주며 위안을 얻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요. 현실에서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여 거대한 존재로 변화시켜 작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소녀는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요. 이 시기에는 정서적인 불안도 있고 관계에 대한 고민, 자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이지만 어른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 누구나 가슴 속에 살고 있는 사춘기 소녀가 있다고 생각을 하여 저와 현대인을 대신하는 존재를 사춘기 소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려견이 등장하는 작품은 <Gleaming>, <Bright place>, <Dear Blue> 시리즈가 있습니다. <Gleaming> 시리즈에서는 항상 빛이 되는 존재였고 의지가 되는 존재로 작품에서 표현이 되었습니다. 함께 했던 눈이 부셨던 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듯 화면 곳곳을 섬세하게 묘사를 하였고, 낮 풍경의 빛의 표현에 신경을 쓰며 작업을 했습니다. <Bright place> 시리즈에서는 반려견의 머리를 우리가 서 있을 수 있는 대지, 어린 왕자의 별과 같은 마음이 기대고 있을 장소로 표현을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어느덧 노견이 된 까망이를 바라보며 이별을 생각하게 되었고 같이 하는 모든 순간들이 더 소중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하게 된 <Dear Blue> 시리즈에서는 낮 풍경에서 야경으로 시간이 변화하였고, 화면 곳곳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던 <Gleaming> 시리즈와는 다르게 소녀와 반려견에 포커싱을 맞추어 배경은 아웃포커싱 되고 빛들은 빛망울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밤은 누군가에게는 즐겁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슬프기도 한 다양한 정서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까망이를 바라보며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소녀와 반려견의 관계에 더 집중한 시리즈입니다.
<Dear Blue>라는 시리즈의 제목은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 전에 ‘Dear diary’라고 쓰는 말에 착안하여 일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처럼 둘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사실 얼마 전 8월에 까망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어요. 슬픔과 상실감이 컸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이겨낸 상태고요. 그러나 가끔씩 발견하는 까망이의 흔적들에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을 때가 있어요. 이런 그리움의 마음을 담은 까망이가 등장하는 작업은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 갈 구상 중에 있습니다.
저는 판타지가 현실과 닮아 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면 곳곳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기계나 사진이 대신할 수 없는 위안을 전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극사실적인 표현법으로 판타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윤동주 시인의 ‘쉽게 쓰여진 시’의 한 구절이 마음에 닿아 작업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시의 구절 중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구절입니다. 너무나도 가벼워지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시대에 쉽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위로’라는 단어를 전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제 작품도 쉽게 그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내공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작품을 하는 것도 그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잘 그린 그림을 넘어서 제가 건네는 위로가 진심으로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